IMF 때 직장을 잃고 처음 알았습니다|가까운 사람보다 뜻밖의 사람이 따뜻했습니다

1998년으로 기억합니다. IMF의 여파로 사회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저 역시 그 시간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갑작스럽게 퇴출 대상이 되면서 제 직장생활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저는 장기 연수 대상자로 선정되어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회사에 돌아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생각하며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당황스럽다는 말로는 당시의 심정을 다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연수를 중도에 그만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약 3개월 동안 직장 동료들과 함께 우리가 처한 상황과 퇴출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

1998년으로 기억합니다.

 

IMF의 여파로 사회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저 역시 그 시간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갑작스럽게 퇴출 대상이 되면서 제 직장생활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저는 장기 연수 대상자로 선정되어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회사에 돌아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생각하며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당황스럽다는 말로는 당시의 심정을 다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연수를 중도에 그만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약 3개월 동안 직장 동료들과 함께 우리가 처한 상황과 퇴출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개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힘든 상황에 놓이고 나서야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 하루아침에 달라진 제 상황

 

직장생활이 평범하게 이어질 때는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근할 직장이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안정감인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것이 흔들렸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왔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회사에서 제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했기에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왜 내가 이런 상황을 맞아야 하는가.'

 

수없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직장 문제만큼이나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당시 제게는 정말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저 역시 그 사람을 많이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적어도 마음으로는 제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퇴출이라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예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서도 제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생겼습니다.

 

제가 너무 예민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당시에는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걱정해야 했던 어려운 시기였으니까요.

 

그럼에도 당시 제가 느꼈던 싸늘함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느꼈던 거리감이 더 서글펐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사람 사이가 이렇게 쉽게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인가.'

 

그때 처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서운함을 느낀 반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는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평소 특별히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그분에게 특별히 잘해드린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상황을 알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셨습니다.

 

따뜻한 말을 건네주시고 힘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어려운 시기에는 거창한 도움이 아니어도 됩니다.

 

짧은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때 처음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받으면서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나는 그동안 사람을 제대로 보고 살아왔을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 어려울 때 사람의 다른 모습이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인간관계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모두가 잘 지낼 때는 웃으며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도와주기도 하고 직장이라는 조직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물론 힘들 때 곁을 떠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각자 자신의 사정이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의 범위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다른 누군가가 힘들었을 때 충분히 마음을 써주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당시의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경험 덕분에 사람을 대하는 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에게 잘하는 데 이유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너무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나에게 도움이 될까.

 

내가 이만큼 해주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까.

 

직장이라는 조직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평가와 승진이 있고 서로 업무적으로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힘이 되어준 사람은 제가 무엇인가를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경험은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그 후 후배들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이후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 저는 후배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가능하면 먼저 나서려고 했습니다.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제가 앞에 서기보다 후배가 더 돋보일 수 있도록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후배가 좋은 평가를 받고 상을 받거나 승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게도 큰 보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1998년의 경험이 제 마음 한쪽에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어려울 때 외면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적어도 싸늘하게 돌아서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40년 가까이 지나도 기억나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참 많은 일이 생깁니다.

 

성과를 냈던 일도 있고 실패했던 일도 있습니다.

 

승진해서 기뻤던 순간도 있었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상하게도 숫자나 실적보다 사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건네받았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습니다.

 

반대로 믿었던 사람에게서 느꼈던 차가움 역시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두 경험 모두 제게는 필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었고, 다른 하나는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는 따뜻함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알려주었습니다.

 

■ 지금도 사람을 대할 때 생각하는 한 가지

 

1998년의 그 시간을 지나온 지도 참 오래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상대방에게도 각자의 사정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그 경험에서 제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한 사람이 멀어질 수도 있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가장 힘든 순간에 손을 잡아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관계는 참 모르는 일인가 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제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서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 진심을 다하는 것.

 

누군가 어려움에 놓였을 때 가능하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것.

 

1998년 그 힘들었던 3개월이 제게 남겨준 것은 어쩌면 이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장은 언젠가 떠나게 됩니다.

 

직함도 사라지고 서로의 이해관계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힘들 때 누군가가 건넸던 진심은 아주 오랫동안 남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긴 직장생활을 헛되게 보내지는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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