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 년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도 있지만,
조금 다르게 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후배 직원들에게 말을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칭찬은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크게 하고,
듣기 불편한 이야기는 조용히 따로 불러서 하라."
지금 생각하면 참 맞는 말입니다.
저 역시 책임자의 위치에서 가능하면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후배가 좋은 성과를 냈을 때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칭찬해주고,
잘못된 부분이나 고쳐야 할 점이 있을 때는 당사자를 따로 불러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보면 저 역시 언제나 그렇게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 잘되라는 마음이 앞섰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 보면 후배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아집니다.
특히 열심히 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후배에게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잘하면 될 것 같은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말이 강해지기도 했습니다.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니까 이해하겠지.'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중요한 것을 하나 놓쳤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공개된 자리에서 했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회의를 하다 보면 여러 직원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한두 번쯤은 공개적인 회의 자리나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특정 업무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창피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조금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 말을 듣던 후배의 마음은 어땠을까.'
저는 업무를 이야기했다고 생각했지만,
후배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이 지적받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 말이 마음에 남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는 몇 분의 이야기였지만 그 사람에게는 훨씬 오래 기억되는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작은 후회가 남습니다.
■ 칭찬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했어야 했습니다
반대로 칭찬은 조금 달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배가 좋은 성과를 냈다면 책임자가 혼자 알고 있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이번 일은 ○○씨가 정말 고생했습니다."
"이 결과는 ○○씨가 끝까지 책임지고 해준 덕분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해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노력한 것을 조직에서 인정받는다는 느낌은 돈으로 받는 보상과는 또 다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책임자가 자신의 공으로 가져가지 않고 후배가 한 일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그 후배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도 이런 칭찬을 더 많이 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불편한 이야기는 둘만 있을 때 했어야 했습니다
반대로 잘못된 점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방법이 달라야 했습니다.
가능하면 조용히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했어?"
라고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바로 지적하기보다,
회의가 끝난 뒤 차 한잔하면서
"아까 그 부분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한번 이야기해보자."
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제가 생각하는 문제점을 차근차근 설명했다면 같은 내용이라도 받아들이는 마음은 달랐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존심이 있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으면 내용보다 창피함이 먼저 마음에 남을 수도 있습니다.
책임자는 잘못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까지 살펴야 했던 것 같습니다.
■ 꼭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달 방법도 한 가지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반드시 직접 불러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짧은 메일이나 메시지가 더 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감정이 섞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바로 이야기하기보다 시간을 조금 두고 정리된 문장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중요한 문제라면 직접 만나 충분히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작은 조언이나 격려라면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특히 그 부분은 정말 잘했습니다."
라는 짧은 메시지 한 줄도 후배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상대방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도록 먼저 간단하게 전달하고 나중에 만나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입니다.
40여 년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이런 방법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좋은 의도가 좋은 전달을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듣기 불편한 이야기를 했던 대부분의 이유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좋은 뜻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상처를 받았다면 전달 방법에는 아쉬움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책임자의 위치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동료가 하는 것과 상사가 하는 것은 무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조언이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질책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만큼
어디에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할 것인가도 중요했습니다.
■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한 가지는 다르게 하고 싶습니다
40여 년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했던 말들을 모두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다시 책임자의 자리에서 후배들과 일할 수 있다면 한 가지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칭찬할 일이 있다면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정말 잘했다."
"고생했다."
"이번 성과는 당신 덕분이다."
이런 이야기는 아끼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듣기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먼저 말하기보다 그 후배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싶습니다.
필요하다면 짧은 메일이나 메시지를 통해 한 번 더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 결국 사람에게 오래 남는 것은 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직장에서는 수많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잊힙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힘들 때 들었던 따뜻한 한마디와
많은 사람 앞에서 들었던 아픈 한마디는 오래 기억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후배들에게 했던 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퇴직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을 조금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좋은 선배가 된다는 것은 후배에게 옳은 말만 많이 해주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잘했을 때는 마음껏 인정해주고,
잘못했을 때는 그 사람의 자존심까지 생각하며 이야기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제가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직장생활의 지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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